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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연세대 서편 스미스 능선 전투 (9월 24일)
한국해병 제1대대로부터 물려받은 미 제 5해병연대 제 2대대의 공격목표는 북부 105고지라 불리던 의령터널(이화여대 정문에서 동쪽으로 100미터 지점의 철도터널)고지였다. 이 목표 공격에 앞서 안산에서 56고지로 이어지는 능..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9-23 02:47 pm추천 -
[비공개] 연희고지 전투 - 한미 해병대의 공격 (9월 22, 23일)
9월 22일 07:00 미 제 5해병연대의 공격은 개시되었다. 전날과 같이 좌측방에 위치하는 제 3대대의 목표는 안산 296고지, 우측방 제 1대대의 목표는 와우산(남쪽 105고지, 홍익대 뒷산), 그리고 중앙에 위치하는 한국 해병 제1대대의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9-21 02:14 pm추천 -
[비공개] 연희동 104고지 전투 (9월 21일)
인천 상륙 이래 한국 해병들이 지녀온 일념은 수도탈환의 선봉에 선다는 것이었다. 서울을 향한 진격의 대열에 나설 때 사기는 충천했고 측방방호로 임무가 전환될 때 사기는 저하됐다. 때로는 미 해병사단장에 대한 조언자적..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9-18 02:57 pm추천 -
[비공개] 지도로 보는 연희고지 전투 현장
조급한 마음으로 뛰다시피 기다시피독수리 몇 마리 포개어 날듯연희고지 마루턱에 다다랐을 때저편 이화고지로부터 우리를 저격하는 막강한 돌풍 같은 적탄에나는 선듯 하는 복부에 손을 탁 대며 뭉클하는 적 시체를 밟는지..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9-14 03:29 pm추천 -
[비공개] 7사단 18포병대대 학도병의 덕천 탈출기
덕천은 7사단 사령부가 있는 곳으로 강변 모래밭에 모여든 철수병력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는 등 비교적 질서가 잡혀있었다. 주먹밥이 나누어져 막 먹으려 할 때 강 건너에서 중공군의 집중사격이 시작되었다. 김석찬은 덕천에..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9-12 01:14 pm추천 -
[비공개] 걷는 공수부대 북한군 10사단의 영남 침투
1950년 12월 북한과 중국은 조중연합사령부를 조직하였고 팽덕회가 총사령관 겸 정치위원, 조선인민군 전선사령관 김웅대장이 중공군 등화와 함께 부사령관, 박일우가 부정치위원을 맡게 되었다. 1951년 신정 무렵 중공군이 3..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8-26 03:24 pm추천 -
[비공개] 기습 받은 영원(寧遠)의 10연대 지휘소
42군 정면에 있는 적은 한국군 8사단이었다. 42군이 취한 전법은 기동전으로 적을 섬멸하고 우회해서 적을 분산시키는 것으로 구체적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125사단이 정면공격부대가 되어 영원에서 정면돌파를 실시해 한국군..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8-20 11:08 am추천 -
[비공개] 그래도 18연대
부대를 소개하면서 "백전불패" "천하무적" "상승" 등의 수식어를 많이 붙인다. 그런 표현이 약간 과장된 면이 많긴 하지만 자기 부대의 전통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지켜간다는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 ..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8-18 06:03 pm추천 -
[비공개] 공화국 이중영웅 방호산의 몰락
인민군은 인천상륙작전 후인 50년 9월 24일 전전선에서 후퇴를 시작했다. 사실상 그것은 전략적 후퇴가 아닌 무질서한 도망이었다. 많은 부대들의 지휘계통이 흩어졌고 총을 버린 군인들이 삼삼오오 제멋대로 무리지어 도망했..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8-17 10:34 am추천 -
[비공개] 일제시대 학병과 지원병
일제 말기인 1943년 일본군에 끌려간 학도지원병(사실상 강제 징병. 이하 학병)은 4300여 명이고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군에 지원한 육군특별지원병(이하 지원병)은 17600여 명이다. 단순한 이분법을 매우 싫어하지만 이들 학..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8-10 12:42 pm추천 -
[비공개] 평양 학병 사건 재판정의 김석원 대좌
1944년 평양에서는 강제 징집된 학병들이 일본군의 무기를 탈취하여 부전고원 방면에서 무장투쟁을 하려다 조선인 헌병보들의 밀고로 전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이 때 재판을 받던 의거 학병들 중에 재판정에서의 김석원 대..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7-29 02:53 pm추천 -
[비공개] 인간미가 있던 북한군 4사단장
포로가 된 다음날 아침이었다. 동굴 바깥쪽이 시끌시끌하더니 누군가 기세당당하게 동굴에 들어왔다. 계속 무슨 소리를 외치며 경례를 붙이는 것을 보니 높은 사람인 것 같았다. “해방군관 동무!” 누군가의 묵직한 목소리..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7-28 02:03 pm추천 -
[비공개] 26연대의 포항 형산강 도하작전에서
우리 26연대는 포항 남쪽 형산강 제방에 방어선을 폈다. 2대대는 형산교로부터 동쪽 해변까지 병력을 배치하였다. 이때부터 형산강 도하작전은 개시되었다. 소부대를 바다로 우회하여 공격하고 야간을 이용하여 작은 배로 도..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7-20 02:55 pm추천 -
[비공개] 정래혁 참모장이 본 3사단의 연대장들
3사단의 각 연대장이 다 개성이 특이한 분들이었는데 22연대장 김응조 중령은 영웅심이 강한 호걸풍이 많은 분으로 전술과 전략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고 23연대장 김종순 중령은 사람됨이 그릇이 크고 전투도 곧잘 지도하는 분..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7-11 09:52 am추천 -
[비공개] 우리 연대장은 실종 상태이니...
1950년 8월, 인천 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약 1개월 전이었다. 일명 워커라인이라 불리워진 부산 교두보의 외곽 방위선에서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영천 전선을 지키던 26연대가 괴멸되었다. 연대장 이xx 대령은 행방불명되었고 연대..금성천의 한국전쟁사|2015-07-10 11:55 am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