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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필리핀 함락(4)-필리핀군의 동원과 훈련
4. 필리핀군의 동원과 훈련 필리핀군을 동원하고 훈련시키며 보급하는 일은 극동미육군사령부의 시급하고 중요한 임무였다. 맥아더 장군은 1941년 9월 1일을 기하여 10개 사단, 75,000명의 필리핀군에 동원령을 내렸다. 동시에 25,0..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12-16 11:00 am추천 -
[비공개] 필리핀 함락(3)-극동미육군
3. 극동미육군 필리핀 자치령이 국군을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국제 정세는 급변하고 있었다. 1939년 9월에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듬해인 1940년 4월에는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5월에..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12-13 11:00 am추천 -
[비공개] 필리핀 함락(2)-필리핀군 건설
2. 필리핀군 건설 필리핀 자치령이 성립하기 전까지 필리핀의 방어는 미국이 전담했다. 필리핀 수비대는 약 10,000명으로 절반은 미군이고 절반은 필리핀 스카우트(Philippine Scouts)였다. 필리핀 스카우트는 미군의 일부로 장교는 ..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12-09 11:00 am추천 -
[비공개] 땅에 꽂힌 연합군의 총 - WW2 Allied Force Soldie..
태평양전쟁시 마샬 군도 에니웨톡 환초 전투에서 승리한 미 해병대 제 22연대 대원들이 전투가 벌어진 지점의 해변에 표식으로 꽂아 놓은 M 1 개런드 라이플 - 1944년 2월 22일 북아프리카에서 전사한 두명의 영국 스코틀랜드 출..슈트름게슈쯔의 밀리터리와 병기|2016-12-07 08:25 pm추천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68, 마지막회)-후기
68. 후기 1942년 2월 15일 오후 6시 10분에 퍼시발 중장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직후 일본제25군 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 중장은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하여 일본군에게 2월 16일 날이 밝을 때까지 부대 이동을 금했다. 일본항공..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09-02 11:00 am추천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66)-탈출
66. 탈출 싱가포르 수비대의 모든 병사가 항복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많은 병사가 1942년 2월 12일 이후에 작은 배를 타고 탈출을 감행했다. 그 시기에는 바다가 잔잔한 데다가 조류가 남서쪽으로 강하게 흘렀기 때문에 일본..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08-26 11:00 am추천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65)-항복
65. 항복 1942년 2월 15일 아침에 퍼시발 중장은 민방위 사령관 심슨 소장으로부터 싱가포르의 물 공급상황이 악화되었다는 보고를 들었다. 일본군이 13일에 저수지를 점령했지만 우들라이의 펌프장을 아직 영국군이 장악하고 있..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08-23 11:00 am추천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64)-마지막 나날
64. 마지막 나날 1942년 2월 13일이 되자 싱가포르 시내의 상황이 심각해졌다. 기존 인구에 약 50만명의 피난민이 몰려들어 해안을 중심으로 반경 5km 내에 100만명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방어선이 시내에 접근함에 따라 공습 또는 ..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08-19 11:00 am추천 -
[비공개] 일본 야마모토 이소로쿠 탑승 G4M 폭격기를 요격시킨 P-38 라이트..
태평양전쟁 당시 파푸아 뉴기니 부겐빌 섬 상공에서 일본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탑승한 1식 G4M 11형 폭격기를 요격하는 미 공군 P-38 라이트닝 전투기의 상상화 - 1943년 4월 18일 뉴기니 제도 부겐빌섬의 ..슈트름게슈쯔의 밀리터리와 병기|2016-08-12 01:49 am추천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62)-최종 방어선으로의 철수
62. 최종 방어선으로의 철수 1942년 2월 12일 아침에 엠파이어스타와 다른 1척의 상선이 해군 및 공군의 지상요원과 기술자 등을 태우고 순양함 더반과 구축함 2척의 호위를 받으면서 싱가포르를 떠났다. 이 선단은 일본군의 심한..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08-09 11:00 am추천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61)-항복권고문 투하
61. 항복권고문 투하 1942년 2월 11일 새벽이 되었을 때 서부지구사령부는 밤새 제12여단에게 벌어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 부킷판장이 뚫렸다는 소식을 들은 서부지구사령부는 11일 새벽 2시 15분, 톰포스 지휘관 토머..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08-05 11:00 am추천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60)-부킷티마 함락
60. 부킷티마 함락 일본제5사단의 보병제42연대는 10일 저녁에 초아추캉 도로를 따라 진격하여 제12여단(파리스 준장)을 공격했다. 11마일 이정표 지역을 지키던 제4/19하이드라바드대대는 일격에 패배하여 부킷판장을 통하여 도..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08-02 11:00 am추천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57)-근위사단 상륙
57. 근위사단 상륙 둑길 지역을 지키던 제27호주여단(맥스웰 준장)은 9일 새벽에 인접한 제22호주여단 구역에 일본군이 상륙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제2/29호주대대를 서부지구사령부에 빼앗겨 2개 대대만 가지고 있던 맥스웰 준..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07-22 11:00 am추천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55)-상륙(3)
55. 상륙(3)-제2/19호주대대구역 제22호주여단의 좌익은 로버트슨 소령의 제2/19호주대대가 맡았다. 대대본부는 베리강 북쪽의 언덕에 있었으며 해안방어선은 페르감 강을 경계로 우익은 B 중대(키건 소령), 좌익은 D중대(빈센트 ..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07-15 11:00 am추천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54)-상륙(2)
54. 상륙(2) - 제2/18호주대대 구역 제22호주여단의 중앙을 지키던 제2/18호주대대의 우익은 A 중대(존스턴 대위), 좌익은 C 중대(오케이 대위)가 지키고 있었다. 제2/18호주대대 구역에 상륙한 일본군은 제18사단의 좌익대였다. 제18..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2016-07-12 11:00 am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