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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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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이웃 안 받습니다...........내과 전문의 김추성 평화는 강자의 특권이다. 약자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 - 윈스턴 처칠
블로그"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에 대한 검색결과1578건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43)-바투파핫의 위기  

    43. 바투파핫의 위기 1942년 1월 19일에 ABDA 사령관 웨이벌 대장은 싱가포르 북해안에 방어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처칠 수상에게 전문을 보내어 이 사실을 알리면서 만일 조호르를 상실할 경우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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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42)-제45여단의 고난  

    42. 제45여단의 고난 1942년 1월 19일이 되자 바크리를 지키고 있던 제45인도보병여단의 운명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19일 아침에 일본군 2개 대대가 남쪽으로부터 바크리를 공격했다. 바크리 시가지를 노린 근위보병제4연대제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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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41)-부킷펠란독 함락  

    41. 부킷펠란독 함락 1942년 1월 17일에 서부부대사령관 고든 벤넷 소장은 바크리를 지키던 제45인도보병여단장 허버트 던칸 준장에게 반격을 실시하여 무아르를 탈환하라고 명령했다. 던칸 준장은 18일에 반격을 실시하기로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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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40)-무아르 함락  

    40. 무아르 함락 1942년 1월 15일 아침에 무카이데 지대가 게마스에서 패배하자 제5사단 주력이 나섰다. 제5사단장 마츠이 다쿠로 중장은 보병제9여단(보병제11 및 제41연대)에 무카이데 지대를 편입한 후 간선도로를 따라 게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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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9)-게마스 전투  

    39. 게마스 전투 쿠알라룸푸르를 점령한 1942년 1월 11일자 일본제25군 사령부의 정세판단에 따르면 후퇴 중인 영국군은 싱가포르 섬 이북의 마지막 자연방어선인 무아르 강에 의존하여 조호르를 방어하려고 할 것이었다. 제25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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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8)-쿠알라룸푸르 함락  

    38. 쿠알라룸푸르 함락 1942년 1월 4일에 제8호주사단장 고든 베넷 소장이 말레이 사령관 퍼시발 중장에게 제안을 했다. 제3인도군단이 남하하여 조호르에 진입할 경우 자신의 지휘 아래 두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제8호주사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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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7)-슬림강 방어선 붕괴  

    37. 슬림강 방어선 붕괴 1942년 1월 7일 아침에 일본군이 트롤락 지구에서 제12여단을 유린하는 동안 남쪽의 탄종말림에 사령부를 둔 제11사단장 파리스 준장은 상황 파악에 애를 먹고 있었다. 말레이 주둔 영국군의 고질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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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6)-트롤락 함락  

    36. 트롤락 함락 제11사단은 슬림강 도하지점에서 일본군 진격을 4일 정도 막을 생각으로 중간지연지역을 설정했다. 중간지연지역은 2개 지구로 나뉘어졌다. 철도와 간선도로가 나란히 통과하는 트롤락 지구는 트롤락 북쪽 5.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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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5)-셀랑고르 방어선  

    35. 셀랑고르 방어선 서부 말레이에서는 캄파르에서 일본군 주력의 남진을 막고 있던 제11사단이 텔록안손 방향에서 밀고 들어오는 일본군 때문에 보급로가 차단될 위기에 처하자 캄파르를 포기하고 1942년 1월 4일까지 승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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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4)-쿠안탄 함락  

    34. 쿠안탄 함락 영국군과 일본군의 주력이 말레이에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제9인도사단은 제8인도여단을 쿠알라리피스-제라툿 방면에, 제22인도여단을 쿠안탄에 배치하여 동부 말레이를 방어하고 있었다. 일본보병제56연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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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3)-ABDA 사령부  

    33. ABDA 사령부 일본과의 전쟁이 벌어진 지 5일 후에 처칠 수상과 참모총장들은 미국과의 회담을 위하여 전함 듀크오브요크를 타고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이후 워싱턴에서 열린 아카디아 회담에서 미국과 영국은 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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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2)-증원(2)  

    32. 증원(2) - 한계 1941년 12월 25일까지의 증원결정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의 항공기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빅토리아포인트의 상실로 인하여 전투기는 배로 수송해야 했는데 당시 전투기가 있던 가장 가까운 항구인 더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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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1)-증원(1)  

    31. 증원(1) - 경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진주만 기습까지 영국의 방어 중점은 본토와 지중해였다. 따라서 1941년 12월 8일이 되었을 때 홍콩과 말레이 수비대의 전력은 방어에 필요한 수준보다 한참 약했다.인도의 사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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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0)-캄파르 전투  

    30. 캄파르 전투 쿠알라룸푸르 부근의 포트스웨튼햄에 기지를 둔 페락전대의 고속정 몇 척이 12월 28일에 트롱 부근에 로즈부대 병력을 침투시켜 일본군의 보급로를 공격했다. 습격조는 해안도로에 매복하여 일본군 트럭 몇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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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29)-극동총사령관 교체  

    29. 극동 총사령관 교체 1941년 12월 23일에 극동총사령관이 로버트 프룩포팸 공군대장에서 헨리 파우널 육군중장으로 바뀌었다. 원래 전쟁 전에 교체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지휘체계 안정을 위하여 연기했다가 싱가포르 지역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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