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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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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이웃 안 받습니다...........내과 전문의 김추성 평화는 강자의 특권이다. 약자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 - 윈스턴 처칠
블로그"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에 대한 검색결과1527건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7)-슬림강 방어선 붕괴  

    37. 슬림강 방어선 붕괴 1942년 1월 7일 아침에 일본군이 트롤락 지구에서 제12여단을 유린하는 동안 남쪽의 탄종말림에 사령부를 둔 제11사단장 파리스 준장은 상황 파악에 애를 먹고 있었다. 말레이 주둔 영국군의 고질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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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6)-트롤락 함락  

    36. 트롤락 함락 제11사단은 슬림강 도하지점에서 일본군 진격을 4일 정도 막을 생각으로 중간지연지역을 설정했다. 중간지연지역은 2개 지구로 나뉘어졌다. 철도와 간선도로가 나란히 통과하는 트롤락 지구는 트롤락 북쪽 5.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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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5)-셀랑고르 방어선  

    35. 셀랑고르 방어선 서부 말레이에서는 캄파르에서 일본군 주력의 남진을 막고 있던 제11사단이 텔록안손 방향에서 밀고 들어오는 일본군 때문에 보급로가 차단될 위기에 처하자 캄파르를 포기하고 1942년 1월 4일까지 승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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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4)-쿠안탄 함락  

    34. 쿠안탄 함락 영국군과 일본군의 주력이 말레이에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제9인도사단은 제8인도여단을 쿠알라리피스-제라툿 방면에, 제22인도여단을 쿠안탄에 배치하여 동부 말레이를 방어하고 있었다. 일본보병제56연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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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3)-ABDA 사령부  

    33. ABDA 사령부 일본과의 전쟁이 벌어진 지 5일 후에 처칠 수상과 참모총장들은 미국과의 회담을 위하여 전함 듀크오브요크를 타고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이후 워싱턴에서 열린 아카디아 회담에서 미국과 영국은 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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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2)-증원(2)  

    32. 증원(2) - 한계 1941년 12월 25일까지의 증원결정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의 항공기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빅토리아포인트의 상실로 인하여 전투기는 배로 수송해야 했는데 당시 전투기가 있던 가장 가까운 항구인 더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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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1)-증원(1)  

    31. 증원(1) - 경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진주만 기습까지 영국의 방어 중점은 본토와 지중해였다. 따라서 1941년 12월 8일이 되었을 때 홍콩과 말레이 수비대의 전력은 방어에 필요한 수준보다 한참 약했다.인도의 사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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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30)-캄파르 전투  

    30. 캄파르 전투 쿠알라룸푸르 부근의 포트스웨튼햄에 기지를 둔 페락전대의 고속정 몇 척이 12월 28일에 트롱 부근에 로즈부대 병력을 침투시켜 일본군의 보급로를 공격했다. 습격조는 해안도로에 매복하여 일본군 트럭 몇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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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29)-극동총사령관 교체  

    29. 극동 총사령관 교체 1941년 12월 23일에 극동총사령관이 로버트 프룩포팸 공군대장에서 헨리 파우널 육군중장으로 바뀌었다. 원래 전쟁 전에 교체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지휘체계 안정을 위하여 연기했다가 싱가포르 지역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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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전쟁사를 움직인 100인  

    책 및 저자에 대한 소개는 여기로 디코 시절부터 교류가 있었고 제 블로그 초기부터의 서로이웃이신 장웅진 님의 저작입니다. 저자 사인까지 적힌 책을 받고 주말에 읽은 다음 서평 올립니다. 이름 그대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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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프랭클린은 미드웨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에섹스급 항공모함인 CV-13 프랭클린은 오키나와 상륙을 앞둔 1945년 3월 19일 아침에 일본본토에서 불과 80km 떨어진 해상에서 공습을 받았습니다. 250kg 폭탄 2발이 무장과 연료를 만재한 함재기들로 가득찬 격납갑판에 떨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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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28)-항공작전(1941년12월 후반기)  

    28. 항공작전(1941년 12월 후반기) 제3군단이 무다강에서 페락강으로 철수하는 동안 일본기들은 영국기들이 북부말레이의 비행장을 사용하는 것을 저지하면서 이포 비행장을 폭격했다. 그 결과 19일이 되자 쿠알라룸푸르 부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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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27)-히스 중장의 실수  

    27. 히스 중장의 실수 1941년 12월 18일에 영국, 미국, 네덜란드, 호주 및 뉴질랜드 대표가 싱가포르에 모여 싱가포르 지역상 더프 쿠퍼의 사회로 연합군의 향후 작전에 대해 논의했다. 더프 쿠퍼는 이 회의의 결론을 담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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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26)-무다강 철수  

    26. 무다강 철수 제3인도군단장 루이스 히스 중장은 1941년 12월 16일 아침에 자신의 사령부에서 제11인도사단장 머레이-라이언 소장과 회의를 가진 후 제11사단을 현재 배치된 무다강 전선에서 50km 후방의 크리안 강까지 후퇴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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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공개] 싱가포르 함락(25)-영령 보르네오(2)  

    25. 영령 보르네오(2) - 함락 12월 22일에 일본군 보병제124연대 주력(2개 대대)은 수송선 6척에 타고 미리를 떠나 쿠칭으로 남하했으며 와타나베 소좌가 지휘하는 1개 대대는 북상했다. (영령 보르네오. http://www.s-s-s.org.uk/sss.htm?ss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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